2018년 10월 27일 토요일

(잡담) 삶의 의미에 대하여("빅터 프랭클-죽음의 수용소에서" 참고)

요새 때늦은 사춘기가 다시 찾아왔다.

뭘 해도 재미없고, 하고 싶은 것도 마땅히 없고, 하고 싶은 게 없는데 무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도 맘에 안 들고.

저녁 6~7시 퇴근하면 그 이후부터 자기 전까지가 그나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인데, 그 자유시간을 뭘로 채워야 하는건지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우울했다. 아이러니한 건, 그럴수록 "무엇을 하는 것이 의미있을까"를 고민하다가 "가장 무의미한 일-핸드폰 만지작거리기"로 시간을 다 보내고, 더욱 우울해하게 되는 것이었다.

이대로는 안된다는 죄책감, 불편감을 안은 채 지내온 요 며칠. 어제는 너무 답답해서 "삶의 의미"를 구글링해보았다.

관련 도서에 대한 포스팅이 눈길을 끌었는데, 신기하게도 검색 1페이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책이 빅터 프랭클의 "죽음의 수용소에서"였다. 이 책은 나도 매우 감명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로 우리 집 거실 책장에 이미 꽂혀있는 책이다.

혹시나 하는 마음에 책을 펼쳐 들었고, 너무나 절묘하게 아래의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.


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.(오 이런...)
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'자기'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.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, 그 자신의 삶에 대해 '책임을 짊으로써'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.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.


삶의 의미를 묻는데 답이 안 나와서 답답했던 내게, 그런거 물으면 안 된다는 일갈이 날아왔다. 질문을 하는 주체는 "인간(나)"이 아니라 "그 인간(나)이 살고 있는 삶"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말이다.

돌이켜보면, 요즘 내 삶이 내게 던지고 있는 질문과 과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. 회사일만 해도 엄청난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, 반복되는 루틴에만 포커스를 맞추며, '저 과제는 내 과제가 아니야'라고 생각하며 지냈다. 가정생활은 워낙 안정감 있고 변화가 적어서 과제로 느껴질만한 일이 없기도 했고.

아! 이래서 내게 사춘기가 온 거구나!

와이프와 대화하면서 생각했던 과제들, 평소 외면해왔던 과제들을 수첩에 쭉 적어내려가니, 그것만 해도 벌써 산더미다. 내 앞의 과제를 외면하지 말고,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 사춘기는 자연스레 물러가지 않을까 싶다.